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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of Christian

톰 라이트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본문

생활/영화, 그리고 책

톰 라이트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christianjin 2014. 6. 26. 17:33



<이미지 출처 : 갓피플몰>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Jesus And The Victory Of GOD.


: 박문재 역, 크리스챤다이제스트, ~ p1014.


톰 라이트(N.T. Wright) 의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 Jesus And The Victory of GOD’ (박문재 역, 크리스챤다이제스트 발간, 이하 JVG )은 그가 계획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기원과 하나님에 대한 질문(혹은 문제) : Christian Origins And The Question of GOD ” 시리즈의 두번째 권입니다.  ( 첫 권은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 The New Testament And People Of GOD’ 입니다.   


1권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리뷰 :

2014/06/26 - [생활/영화, 그리고 책] - 톰 라이트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들은 포로생활로부터의 귀한을 하나님의 신원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로 말미암은 새로운 공동체인 그리스도교는 하나님의 신원을 민족의 해방이 아닌 예수와 관련된 사건들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고 믿었습니다. 


톰라이트는 그러기에 이제는 ‘예수’에 관하여 연구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하나님’으로서의 예수, 혹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라는 답을 가지고 접근할 것이 아니라 신약성서의 텍스트들을 통해 역추적하여 발견하는 이야기들과 질문들, 그리고 상징들을 통해 답을 찾아야 할 것을 말합니다.  그는 계몽주의적 성서연구는 배척해야 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예수읽기"로 안내하는 길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가 앞서 쓴 책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NTPG)’에서는 이러한 과정의 필요성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분량을 가지고 설명을 합니다.   그는 이것과 관련하여 그 동안 해 왔던 질문들의 방향을 바꿀 것을 제시하는데,  그 질문은 바로 ‘예수가 왜 죽었나?’가 아니라 ‘예수는 왜 살았나?’ 라는 질문입니다.


그러면서 라이트는 크로산, 브레데, 슈바이쳐, 불트만 등의 계몽주의적 신학자들의 예수에 대한 역사적 접근방식에 대해서 소개하며 그것의 유익과 더불어 자신이 생각하는 보충해야 할 점, 혹은 반대하는 점들을 말합니다.


라이트는 그것을 ‘새로운 새탐구’라고 말하며 그것을 ‘제 3의 탐구’라고 명명합니다.
라이트는 ‘옛탐구’가 슈바이처에 의해 마감 되었고, 케제만과 예수 세미나에 의해 ‘새탐구’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들이 새로운 새탐구. 즉 제 3의 탐구로 가야함을 말합니다.  


여기서 간단하게 옛탐구, 새탐구, 그리고 제 3의 탐구를 정리해 보자면,
옛탐구는 예수와 주후 1세기의 유대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 말은 예수가 유대인이었지만 유대인의 성격 속에서 예수의 ‘의미’를 찾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새탐구역시 예수가 가진 유대인의 특징들을 경시했고, 대신에 지중해 세계의 다른 문화들의 측면에서 예수를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제 3의 탐구는 예수를 지중해 세계의 다른 문화들 속에서 살아간 주후 1세기의 유대인으로 봅니다.  이 말은 즉 예수의 언어는 ‘묵시론적’ 이었다는 말입니다.
예수의 중심사상은 '묵시론적'이었다는 슈바이처의 지적은 타당하지만, 그 '묵시론적'인 것을 '역사적 종말론'으로 읽어낸 것은 타당하지 못하고, 불트만의 탈신화화는 예수의 인격을 그려내는대는 성공했지만, 탈신화화 된 예수는 주후 1세기의 배경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 라이트의 지적입니다.



‘새탐구(예수 세미나)’는 ‘말씀들’을 일차적 자료로 사용하는 성향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새탐구는 이 말씀들의 판별기준에 의거하여 역사적 연구를 행할 수 있다고 여기는데 라이트는 이것이 잘못된 사고라고 지적합니다. 또한 탈신화화된 수직적 종말론을 전파한 비유대화된 예수에 대한 그림도 수정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그가 말씀들의 판별기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그의 전작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NTPG)’를 이해해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라이트는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에서 ‘이야기’는 현실을 보는 ‘수단’임을 말해줍니다. 따라서, 이야기들이 최종적으로 들려주는 형태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그 이야기들이 어떻게 결합되었는지에 대해 주 된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닌 듯 보입니다.


예수는 주후1세기 유대적 유일신 사상을 믿는 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가르침, 행함 등은 무시간적 진리 혹은 교리적 읽기가 아닌 그 유대적 배경내에서 이해되어져야 합니다. 라이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예수의 '신성'까지도 배제하고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왜냐하면 답을 정하고 이야기를 볼 것이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후 1세기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죄에 대한 심판은 '포로생활'이었으며, 죄로부터의 돌이킴, 회개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신원과 구원은 '포로생활의 종결' 즉 '새로운 출애굽(새로운 출애굽의 갱신)'이었습니다.

그 포로생활의 종결, 새로운 출애굽은 하나님의 오심, 하나님 나라의 오심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로 '감'이 아닌 ‘옴’이입니다.



예수는 하나님나라가 자신을 통해서 오고 있다고 스스로 믿었고, 그 믿음 속에서 말하고 행하였습니다. 그 행함은 옆으로 누운 에스겔, 또는 단지를 깨뜨린 예레미야과 동일한 현실을 몸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성전', '토라' 에 관한 상징 등을 이해해야 합니다. - 더렵혀진 성전에 대한 '정결'과 '재건', 그리고 '토라'의 위대한 시행 등-



예수는 당시의 복잡하고 다면적인 유대교 내에 철저하게 속해 있었다. 예수의 항의들은 유대인들의 고전적인 내부로부터의 항의들이었다. 예수의 주장들은 당시의 그 밖의 다른 많은 유대 지도자들의 주장들과 내용에 있어서는 달랐지만 형식에 있어서는 비슷했다. 예수의 활동들은 유대적 세계관 내에서 의미를 지녔고, 또한 그 속에서 의미를 지니도록 의도되었다. 예수의 이야기들은 몇몇 표준적인 유대인들의 이야기 줄거리들을 상기시켰고 확대하였으며 부분적으로 다시 그렸다. 에수 자신의 사역의 상징들은 특히 성취의 때가 이르면 이스라엘의 상징 세계에 대한 필연적인 재정립이 그 특징들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주장함을 통해서 그의 동시대인들이었던 유대인들의 표준적 상징들의 영속성에 도전하였다. 이렇게 예수의 실천, 그의 이야기들, 그의 상징들은 모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자기가 행하고 있는 것을 통해서 그의 목적들과 약속들을 성취하고 계시다는 그의 믿음과 주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JVG, p720-721.)




예수의 모든 것들이 십자가처형에서 끝이 났다면 그는 비슷한 시기의 혁명가였던 갈릴리 사람 유다, 시몬 벤 코시바 같은 인물. 즉 실패한 메시아들 중 한 사람에 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이스라엘은 '포로'상태였다는 상황을 결코 간과할 수 없음을 지적합니다. 따라서 당연히 그의 ‘부활’(빈 무덤과 부활사건)에 대해서 논하지 않을 수 없음을 말합니다.




: “그리스도교의 기원과 하나님에 대한 질문(혹은 문제) : Christian Origins And The Question of GOD ” 시리즈의 3권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The Resurrection Of The Son Of GOD.” 리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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