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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트 피트리 『성만찬의 신비를 풀다』리뷰

christianjin 2016. 9. 23. 15:39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브랜트 피트리 성만찬의 신비를 풀다를 읽고



<이미지출처 : 페이스북 - 에클레시아북스 페이지>


 

브랜트 피트리(Brant Pitre) | “성만찬의 신비를 풀다”(원제, Jesus and the Jewish Roots of the Eucharist : Unlocking the Secrets of the Last Supper) | 최현만 역 | 에클레시아북스 | 2004 | 219(이하-248쪽은 미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양특별히 유월절의 어린양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고백하냐고 물어보면, 구약성서에 나오는 출애굽사건을 구원에 대한 모형으로 여겨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기 전에 문에 바른 어린양의 피로 인해 마지막 재앙(초태생의 죽음)에서 건짐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말이 결과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몇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첫째, 유월절에는 어린양의 피를 문에 발랐을 뿐 아니라 그 어린양(양고기)을 먹었다

이런 전통과 예수를 어린양으로 보는 것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가?

 

둘째, 첫번째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예수 그리스도 이후로 고기를 먹는 유월절식사가 아니라 성만찬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과연 무엇때문에 그렇게 바뀌었는가?

셋째, 성만찬은 예수의 몸과 피를 먹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유대인이었던 예수는 율법에서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을 몰랐던 것일까?

 

본 책 성만찬의 신비를 풀다의 저자 브랜트 피트리(이하 저자)는 마지막 세번째의 질문을 시작으로 우리가 품을 수 있는 위의 질문들에 대해 하나하나 풀어갑니다.

 

 

세번째 질문 : 예수는 피를 먹지 말라는 율법에 반하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저자는 이 질문에 직접적인 답을 하기에 앞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유대인들이 가졌던 메시아 사상을 알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답변을 위한 과정 1 : 메시아사상과 새로운 출애굽

 

많은 경우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 사상을 정치적인 범위로만 이야기 하는데, 저자는 이러한 태도는 유대사회의 메시아 사상과 메시아 기대에 대해 충분치 못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제시하는 것은 새출애굽을 통한 이스라엘의 회복입니다.

즉 유대인들은 군사적/정치적 메시아만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모세를 기다렸다는 것이죠. 그로 인해 새로운 언약이 성립되고, 새로운 성전(하나님의 임재)이 새워지며, 새 약속의 땅을 기대했었다고 말합니다. (37)

 

특별히 새로운 언약의 성립은 연회와 연관이 있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언약수립이 희생제물의 죽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먹고 마시는 잔치(저자는 이것을 천상의 식사로 표현)로 마무리 됨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새로운 출애굽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유월절이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유월절을 위해 과거의 유월절을 우선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과거의 유월절에는 흠없는 어린양 수컷이 필요했고, 그 어린양은 제물이 되었으며, 그 어린양의 피를 각 집에 뿌렸습니다. 또한 그 고기를 무교병과 함께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유월절을 매년 기념일로 지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당시의 유월절은 출애굽당시의 유월절과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저자는 출애굽당시의 유월절과 예수님 당시의 유월절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 구약성경뿐 아니라 유대교문헌들을 참조하여 그 모습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추적하여 독자들에게 보여줍니다. 그 변화는 크게 네 가지 입니다.

 

첫째, 예수님 당시 유월절제사는 성전에서 드려졌다. 유대인들은 이 제사 후 고기를 가져가 각 가정에서 식사를 했다. 그러나 이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 유대교의 유월절 식사인 세데르(Seder)’가 아니었다.

둘째, 유대인들은 어린양의 제사 후에 껍질을 벗기기 위해 양한테 나무로 된 얇고 부드러운 말뚝을 박았다.

셋째, 유월절에는 유월절의 의미를 설명하는 시간이 있다. 이것은 과거의 경험의 현재화다.

 

넷째, 유대인들은 유월절 밤에 메시아가 올 것이며 그가 속량을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내용을 참조하여 복음서에서 발견되는 예수님의 만찬과 비교해 보면, 먼저 예수님과 제자들은 유월절 밤에, 예루살렘에서(성전이 있는) 식사를 했으며, 이 식사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는 점을 공통점으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차이점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유월절의 초점은 출애굽과 약속된 땅으로의 입성에 있었지만, 예수님은 예레미야가 말한 새언약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또한 어린양의 살과 피가 자신의 살과 피로 바뀝니다.

 

저자는 이렇게 어린양의 고기가 자신의 살과 피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새만나로도 말씀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답변을 위한 과정2 : 만나

 

저자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유대문헌들을 풍성하게 사용합니다.

그러한 사용들을 토대로 유대인들이 만나에 대해서 갖고 있던 몇 가지의 생각들을 소개하는데요.

만나의 선재성”, “만나의 초자연적 실제와 하늘성전에서의 보존”, “메시아가 오면 다시 일어날 만나기적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것을 예수님과 연결시켜서 설명을 합니다. 특별히 만나의 초자연적 실제와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가운데 일용할 양식(에피 우시아)’과 연과지어 설명하는 부분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물론 주 기도문의 이 부분을 만나와 연결시킨 이야기들은 쉽게 찾을 수 있겠지만, 저자의 분석은 의미론적인 연결이 아닌 단어분석을 통한 것이기에 꽤 재미있습니다(이것은 화체설을 주장하기 위한 역할이 되기도 하겠죠).

 

그리고 이 부분의 설명을 통해 예수께서 왜 자신의 피를 마시라고 했는지에 대한 저자의 의견이 나옵니다.

 

저자는 그것을 생명으로 설명합니다. 구약에서 를 먹지 못하게 한 이유는 그것이 생명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것을 사용하여 예수께서 자신의 를 마시라고 한 것은 자신의 생명에 동참하라는 초청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지요.

 

두번째 질문 : 고기를 먹는 유월절 식사가 어째서 성만찬이 되었는가?(왜 양이 아니고 인가?)

 

이 질문은 위의 세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들 속에서도 어느정도 유추가 가능합니다. , 유월절과 만나의 관계이죠. 그러나 저자는 이것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 줍니다.

그 설명의 도구로 저자는 성막과 제사장규례에 등장하는 진설병을 사용합니다.

이 설명은 꽤나 흥미롭고 재미가 있습니다(자세한 설명을 책을 참조하세요).

 

첫번째 질문 : 유월절과 어린양 예수

 

첫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유대사회의 메시아 대망사상, 그리고 새로운 만나에 대한 이야기로서 어느정도 답이 되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와 함께 유대인들이 행했던 유월절의 전통과 예수님의 만찬-십자가를 연결시키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유월절 제사의 형태와는 또 다른 유월절 식사형태(Passover Seder)가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식사가 실제로 세데르로 불렸다는 증거는 없지만, 다른 문헌들을 통해 당시의 식사는 정해진 질서(세데르)에 따라 행해졌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를 통해 유대교 유월절 식사는 네 잔의 포도주를 중심으로 조직되었던 것으로 설명합니다.

첫번째 잔은 도입,  두번째 잔은 선포(유월절의 의미설명), 세번째 잔은 음식을 먹으면서 마시는 잔,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번째 잔은 마무리 의식을 위한 것입니다.

 

저자는 복음서에서 두번째 잔과 세번째 잔에 대한 설명이 있음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네번째 잔은 미완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그것을 겟세마네의 기도, 몰약을 탄 포도주를 거부하신 십자가 위의 예수(15:23), 마지막으로 신 포도주를 받고 운명하신 예수(19:23-30)와 연관지어 설명을 해 줍니다.
이 역시 상당히 흥미있고 설득력 있는 설명들이기에 네 잔의 포도주에 대한 설명과 예수님의 만찬-십자가/부활의 연관성을 책을 통해 자세히 살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가톨릭신학자이기 때문에 책의 결론을 화체설로 이끌어가고자 합니다. 화체설이란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견해입니다.  이 책은 화체설을 직접적으로 주장하는 것 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현존이라는 표현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그리고 기적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통해 결국에는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가 실제의 예수의 몸과 피가 된다는 것으로 독자들을 설득합니다.

 

이 책의 제목에 성만찬의 신비라를 표현이 들어간 것은 결국 그것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는 별개로 유월절과 예수의 만찬-십자가/부활을 연결시키는 저자의 작업은 상당히 훌륭했다고 여겨집니다.

 

다만, ‘화체설을 변호하기 위해 책의 분량을 할당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회론적인 측면, 즉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서 그리스도에게로 연합되는 부분으로서의 성만찬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 졌다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운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바로 앞에서 언급했듯이 성서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의 문헌을 사용하여 유월절과 예수의 만찬-십자가/부활을 연결한 저자의 작업은 충분히 인정을 받을 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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